"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은 아직 젊은 저에게는 먼 미래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 <노인은 늙지 않는다>를 읽으며 아니 든다는 것이 단순히 육체의 쇠퇴나 사회적 퇴장이 아니라 "다르게 사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이 책은 기존의 노년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으며, 노화를 새로운 적응과 성숙의 시기로 재조명합니다.
- 저자
- 마티아스 이를레
- 출판
- 민음사
- 출판일
- 2015.06.23
책의 제목부터 강렬합니다. "노인은 늙지 않는다." 겉보기에는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저자 마티아스 이를레는 여기서 늙는다는 것을 단순히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로 봅니다. 우리는 흔히 늙음이라는 단어를 '쓸모없다', '무기력하다', '의지할 데 없다'는 감정과 연결 짓습니다. 저자는 이 통념에 반기를 들며, 노화가 삶의 기능을 잃는 퇴행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정의하고 적응해 가는 적극적인 시간임을 강조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현실적 낙관주의'라는 개념입니다. 노년기를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되 무너지지 않는 시선을 갖자는 것입니다. 그는 하버드대와 여러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인용하며, 노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실제 수명 연장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인식 하나가 몸과 마음 전체를 바꾼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 하나가 노년의 질을 결정짓는다면, 지금부터 나의 인생 태도도 미리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는 나이 듦이 '죽음에 가까워짐'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고 새로운 기준으로 자신을 정비하는 시간임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은퇴 후에는 더 이상 경쟁하거나 증명할 필요가 없기에, 오히려 더 자유롭고 장조적인 삶을 살 수 있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던 풍경을 다시 발견하는 능력이 노년기에 비로소 열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바쁘게 사느라 미처 들여다보지 못한 감정, 관계,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 이 시기를 제대로 준비하면 노년은 '쓸쓸한 끝'이 아니라 '두 번째 봄'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또한 저자는 심리학자 요헨 브란트슈태터의 이론을 빌려, 인간은 누구나 '동화'(자신의 목표에 환경을 맞춤)와 '순응'(환경에 맞춰 목표를 바꿈)을 통해 끊임없이 적응한다고 설명합니다. 젊을 때는 동화가 강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순응이 중요해집니다. 이는 패배가 아니라 성숙의 증거입니다. '못하게 된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중심에 놓고 삶을 다시 구성해 가는 능력, 이것이 진짜 '노년의 지혜'라는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책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는 관계의 중요성입니다. 노년기는 건강보다도 관계가 더 중요한 자산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정서적 교감, 친구와의 수다, 가족과의 유대는 어떤 약이나 병원보다도 사람을 살리는 힘이 됩니다. 나이 들어서 고립되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바로 이 인간적 접촉의 단절 때문입니다. 저자는 '연결'의 감각을 유지하고, 스스로 고립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노화를 위한 필수 조건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 책이 마냥 이상적이거나 현실을 외면하지는 않습니다. 질병, 상실,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현실도 담담히 다루며, 이를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요청합니다. 때로는 힘들고, 아프고, 쓸쓸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삶의 전부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서도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늙으면서도 여전히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저는 노년을 단순히 기다려야 할 시간으로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지금 이 순간부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지,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노인은 늙지 않는다"는 말의 산 증인이 되고 싶다는 희망도 품게 되었습니다.
<노인은 늙지 않는다>는 단순한 노년기 안내서가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은 책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누군가에게는 준비의 계기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이 책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